I. 서론: Lee[1]에 대한 임상사례분석
말기 암 환자의 경우, 근원적인 완치의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되면서부터 점차 증상이 악화되는 진행기를 거쳐 말기로 판단되어 임종에 이르기까지 수개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차례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는 진행기를 지나 특정한 시점에서 말기로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짧아서 완치를 위한 치료계획이 없을 때 의학적으로 말기라고 하여도 틀림이 없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병의 진행을 늦추고 있어서 이 사례의 완화적 뇌방사선치료와 3차항암약물치료 및 두개골절개술 덕분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뇌전이가 안정적이라고 했고 말기로 판단되기까지 수 년의 시간이 경과하였다.
연명의료결정법상 ‘말기환자(末期患者)’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기준에 따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여기에는 1) 임상적 기준, 2) 다른 질병 또는 질환의 존재 여부, 3) 약물투여 또는 시술 등에 따른 개선 정도, 4) 종전의 진료 경과, 5) 다른 진료 방법의 가능 여부, 6) 그 밖에 말기환자의 진단을 위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진단할 것이 권고된다. 이렇게 말기 진단의 기준은 복잡하므로 개별 임상의사의 판단이 일치하기는 어렵다. 이 사례에서 2022년 두 번째 연명의료 상담 시에는 최소 두 명의 의사가 말기로 판단함에 있어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2018년 반복되는 폐렴이 진행성 암으로 인한 전신쇠약이 원인이기 때문에 호흡기내과 전문의로부터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을 권유받은 시점을 말기의 시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사례는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가 없는 상태에서 병이 진행하고 말기를 거처 임종하기까지 수년의 경과를 보여 심각한 노쇠, 중증치매 등 비암성 환자의 임상경과를 보였다. 대개의 노쇠 또는 중증치매 환자들은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말기라고 판단되지 않는다. 진단 후 수년간의 투병생활(진행기)을 하다가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무의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말기가 된다. 그래서 연명의료중단 등을 이행함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요양병원에서 비암성환자의 생애말기를 오랫동안 관찰한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한다.
“존재했던 육체의 마지막 한 오리 한 방울까지 훑어내고 짜내버린 종말의 모습. 삼 년을 넘게 병상에 있었는데 어쩌면 마지막 일 년은 살아있었다기보다는 죽음을 살았는지 모른다. 죽은 후의 과정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었으니 말이다. 욕창에서 탈저된 부분이 문적문적 떨어져 나왔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Park[2]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악인 조준구의 최후를 묘사한 부분이다. 병원은 환자의 죽음을 지연시켰는데, 어떤 환자들은 연장된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 마지막이 조준구의 최후의 모습인 경우도 있었다. 의사들의 처방과 치료는 그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불필요한 고통을 경험하게 했다. 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사용했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초고령‧치매‧뇌혈관질환 등으로 와상상태에 있는 분들이 폐렴‧패혈증으로 생사의 고비에서 투쟁하고 있을 때 나는 항생제 등으로 몇 차례의 고비를 넘겨 드렸다. 처음 몇 차례는 ‘죽을 고비’였지만 어느 순간 “이 환자는 나의 치료행위를 원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또한 가족들의 환자에 대한 안스러움이 커져가면서부터는, ‘죽을 고비’가 ‘죽을 기회’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항생제 치료 및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였으며, 노화가 완전하게 진행됐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의 종창이 심해 땀처럼 체액이 흘러나오고, 욕창이 생기고, 발가락의 괴사가 발생하는 등(time to die, 몸이 죽을 시간이라고 말함) 죽은 후의 과정이 살아있는 상태(살아서 죽음을 경험, 죽음을 사는)에서 진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환자의 삶에 대한 관점과 의지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며, 고통스럽지 않은 삶의 마침을 원한 사람이었다면 나의 의료행위는 죽을 기회를 박탈하고 살아있음을 강요하여 고통을 연장한 꼴이 되어 버렸다.
II. 본론: 환자의 치료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은 이유
치료거부권은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의료진의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다. 우리 헌법상으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장한 헌법 제10조에 의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일환으로 인정된다. 본 사례에서 환자의 치료거부권이 행사되지 아니한 사유에 대해 살펴본다.
첫째, 환자의 의사가 무엇인지가 이 사례에선 불명확하다. 마치 가족(부인)의 의사가 환자의 의사로 받아들여지지만, 정확한 환자의 의사는 단지 추정될 뿐이다. 환자가 자기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사정이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자면 환자의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 상황이다. 자식이 먼저 떠나면 부모에게 불효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상황에서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불효를 저지르는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에 대해 간과할 수 없다.
둘째, 질병의 임상경과는 너무나도 다양해서 완치를 위한 치료가 없다고 진단된 이후에라도 진행기/말기/임종기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질병마다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정의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셋째, 말기라고 판단됨에 있어 의료진 사이에서 일관됨이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작 환자와 가족들은 말기활성화(activation of terminality)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Kang[3]은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수행한 민족지적 연구를 통해 말기암 환자에서 ‘말기’란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환자와의 의사소통 속에서 비로소 활성화되는 시간적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암을 진단 받은 순간 누구나 죽음(mortality)에 대해 인식하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사가 종양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치료옵션을 모두 소진할 경우 의료진 내부에서 환자에 대한 말기가 합의된다. 이후 호스피스 상담이라는 언어 실천과정을 통해 의료진은 환자의 가족들에게 치료불가능성을 이해시키는데, 이때 비로소 말기가 활성화된다. 말기활성화 단계에 이르러 환자, 가족, 의료진은 각자가 품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바람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본 사례에서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말기라고 하고 종양내과전문의는 ‘아직 말기라고 판단될 수 없다’라고 하여 Kang(2021)이 주장한 말기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존재적 유한성에 대한 선언과 거부와 설득과 수용이 경합하는 경험”이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예측, 불확실성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는 내내 환자, 가족, 의료진 모두에게 도사리고 있다가 몇 가지 절차를 통해 관련된 행위자들 사이에서 활성화되는” 과정이 없었다[3].
넷째, 한두 번의 설득과 교육 또는 준비가 부족한 접근만으로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연명의료 중단으로 인해 ‘왠지 치료를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 등’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Kang[3]은 “소생확률, 연장된 생존 기간과 그 시간의 질, 의료개입의 고통 등 여러 가치들을 저울질하여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행위자들을 지지하는 방안이 대대적으로 연구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논리가 대단히 허약할 뿐 아니라 심지어 허상에 불과함을 드러내려는 시도도 계속되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생리학적 지식, 질병의 진행 과정, 병원의 규칙에 대해 극히 제한된 정보에 기반하여 선택할 것을 강요받게 되지만, 정작 환자는 그런 선택을 내릴 상황이 아니거나 가족들은 그것을 선택이 아니라 환자를 죽게 만드는 책임과 부담으로 느낀다. 병원에서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선택의 환상’은 실패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환자, 가족, 의사가 나누는 협상을 하도록 만든다”라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말기로 이행되는 연속된 시간의 선상에서 Kang[3]이 주장하는 말기활성화는 의료진, 환자, 가족 모두에게 존재에 대한 깊은 숙고를 하게 하는 시간이며, 말기활성화라는 사건을 통해 모두가 받아들이는 삶과 죽음이 된다. 완치를 위한 치료가 없다는 판단 이후 2022년 두 번째 연명의료상담(말기로 판단함이 타당함) 사이 어느 순간에 진행기에서 말기로 활성화 되는 지점이 있었으나, 진행기 때의 생명연장이 지속되면서 말기에 적합한 평안한 치료가 아닌 생명연장을 위한 치료가 지속되어서 치료집착적 무의미한 과잉의료가 지속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Kang[3]은 “의료진 내부에서는 환자의 치료불가능성이 합의되었다 하더라도 그 내부 합의가 말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쓸 약이 없다고 아는 것과 그 환자를 말기 환자로 대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기에 대한 개념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말기 환자를 대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상호 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말기라는 시간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말기는 선험적 경계가 아니라 실천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말기는 의학 텍스트나 어느 영상 이미지가 아니라 지식이 상호인식, 의사소통, 행위와 결합할 때 비로소 실체화되었다. (중략)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말기돌봄의 논의가 너무 늦게 시작되고 있으며”라고 주장하였다. 본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는 실제로 타당한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 최소한 연명의료의 지속이든지 또는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이든 사회적 논의가 진전되고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대한 거친 표현과 연명의료 유지에 대한 반감의 과도함이 논의의 진전과 합의를 가로막고 있다.
III. 결론 및 제언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말기의 활성화는 의료진, 환자, 가족들 간의 상호 이해와 소통을 통한 숙고된 판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존중, 환자의 인격과 자기결정권 존중,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환자가 인간답게 자연스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라고 천명하였으며, 의사윤리지침 제11조에서는 “환자의 자율적 의사 존중, 평소 의사와 이익이 최대한 존중되고 보장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삶과 죽음에 대한 환자의 가치관과 태도를 미리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동지침 제35조에서는 “의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환자 및 가족과 함께 연명치료결정 등에 관한 논의를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례에는 두 차례의 연명의료 상담이 있었다고 하지만 환자의 의사를 알고자 했던 시도가 두 차례만이었을 리는 없다고 추정된다. 의료진들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으로 생애말기에 진입한 환자들이 보다 원활하게 말기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말기가 활성화 되었다고 해서 사전돌봄계획이 작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러한 결정과 계획에 대한 교육과 설득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합의를 바탕으로 사전돌봄계획을 작성할 것을 고지하고 교육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사례에서, 예를 들자면, 편도암의 근치를 위한 치료법이 없음을 의학적으로 판단한 이후 일차 항암화학요법이 실패하고 이차 항암화학요법을 시작할 때, 이차 항암화학요법이 건강보험급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팀에 의한 생애말기 가족교육을 필수적으로 받도록 권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장기요양급여 신청 단계에서 사전돌봄계획에 대한 교육을 환자 또는 가족들이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사회보험이므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됨으로 의료집착적‧돌봄집착적 비용지출이 무제한으로 발생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물론 사회가 판단한 무의미한 의료와 돌봄에 대한 비용을 막자는 주장은 아니다. 사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일지라도 환자가 원하면 당연히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이 숙고된 상황에서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닌 교육과 설득의 부재에 의한 것이고 환자의 의사에 반한 것이라면, 사회적 비용은 의료제공자 및 돌봄제공자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므로 제한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