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현재 세계 여러 국가에서 코로나 19(COVID-19, 바이러스 명으로 SARS-COV-2)가 대유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감염된 많은 환자를 수용할 병상과 의료 자원이 현재 부족하거나 곧 부족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 19가 인체의 호흡 기에 주로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중환자실 병상과 인공호흡기의 부족은 위중한 상태에 있는 환자들을 적절히 치료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1]. 원고를 작성하는2020년 7월 한국의 상황으로만 보면, 곧 의료 자원이 극심하게 부족해 질 것이라 보긴 힘들지만1) 한국의 전문가 대부분 이 올 가을과 겨울에 반드시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2차 대유행 상황에서는 최악의 경우 넘쳐나는 확진자를 수용하기에 약 2,500개의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3]. 본 논문은 이러한 극심한 자원 부족 상황에서 의료 자원2)을 어떻게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더 나은3) 방법으로 배분할 것인지를 탐구할 것이다.
먼저 어떤 자원의 배분(rationing)4)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극히 부족하여 그 자원을 배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자원 배분을 가리 킨다[5,6]. 마스크를 그 예로 들면, 코로나 19 대유행 이전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비교적 넉넉하여 약국 등에서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가격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었다면 이후 극심한 공급 부족, 수요 과잉 상황에서 각 개인에게 2개씩 정해진 요일에 배분하는 것을 일종의 배분 (ration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의료 자원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해질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현재 그리고 곧 의료 자원이 배분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 의료 자원 이 대유행 상황에서 배분될 것이라 동의하더라도 - 이러한 배분이 반드시 윤리적으로 다루어야 할 성격의 것이며 시장을 통한 자유로운 배분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답을 간단히 말하면, 대부분은 보건의료가 개인의 지불 가능성, 즉 경제력에 따라 배분되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장 (만)을 통한 배분이 어떤 정의로운 배분 결과 - 예를 들면, 개인의 필요에 따른 배분 - 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러한 배분을 이룰 수 있는 다른 배분 방식이 도덕적으로 요구된다.
이를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보려 한다. 다이아몬드 또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극히 부족하여 높은 시장 가격이 형성되어 있고 이 가격을 지불할 수 있으며 이를 지불하고 싶은 이들에게만 배분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어떤 이가 높은 시 장 가격으로 인해 다이아몬드를 배분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윤리적으로 반드시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확한 견해에 따라 물론 다를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라는 재화의 배분 이 도덕적, 사회 정의상으로 크게 중요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7]. 반면 보건의료는 사람들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건강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그 사회적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 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과 건강은 사회 정의상으로 요구되는 - 물론 그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 자세한 견해는 다를 수 있지만 - 기회(opportunity)나 능력(capability)의 불평등 혹은 심각한 하락(shortfall)을 야기하기 때문에 보건 의료는 개인의 경제력에 따르기보다 그 필요나 기능의 하락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7,8]. 그렇다고 보면, 중환자실 병상과 인공호흡기의 배분은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이 있으므로 충분히 정의(justice)의 문제이며 시장만을 통한 배분은 그 정의로운 배분 결과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본 논의에 들어가기 전, 또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중환자실 병상이나 인공호흡기를 배분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어떤 명시적인(explicit) 배분 지침 없이도 개별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면 왜 안되냐는 것이다. 코로나 19의 대유행 이전에도 중환자실 병상에 대한 평균적인 수요가 그 공급을 초과하는 경우가 꽤 많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 논문과 같은 명시적인 논의, 혹은 명시적인 배분 지침 없이도 각자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그 병상의 배분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를 크게 문제시하진 않았다. 현재까지의 배분이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 방식으로 이루어 졌는지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코로나 19 대유행 상황에서 이러한 암묵적인 배분(implicit rationing)이 더욱 적절하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수요가 공급을 크게 상회하는 경우 그 배분적 결정은 의료 자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정당한 항의(complaints)에 직면하게 되며 이를 실제 진료 현장의 의사가 모두 해결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둘째, 이러한 배분 결정은 의료 자원을 받지 못할 이들을 양산하기에 기존 의료 전문 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에 기반한 개별 환자에 대한 의무와 대립할 수 있고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이 이 배분 결정에 참여할 경우에 이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큰 도덕적 긴장 상태(moral distress)를 겪을 수 있다[9,10]. 셋째, 암묵적 배분은 전체 환자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정확히 이들의 우선순위를 세우지 못하여, 분명히 살릴 수 있는 혹은 있었던 많은 사람을 죽 게 둘 수 있다[11]. 마지막으로 사회적 논의가 없는 암묵적 배분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던 숨겨진 차별과 배제가 작동하여 사회경제적 혹은 다른 차원에서 더 나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줄 수 있다[12].
그러면 명시적 배분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고 가정하고, 본 논의에 들어가보자. 먼저 본론은 크게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의료 자원 배분이 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도록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이론적 근거를 살펴 본다. 둘째, 동일한 이론적 근거를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더라도 의료 자원 배분에서 추구해야 하는 다른 가치와 고려할 사항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셋째, 실제 적용 중인 의료 자원 배분 지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이론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먼저 바로 다음 절에서는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윤리 원칙이 단지 공리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개별 환자들의 관점에 의해서도 충분히 공정한 (fair) 원칙임을 주장할 것이다.
II. 의료 자원 배분에 관한 이론적 논의
최대한 많은 수(numbers)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의료 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원칙 (이후 간단히 다수 구조의 원칙5)으로서술)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바로 이 원칙이 공리주의에(만) 기반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의료 자원 배분에 관한 윤리적인 논의가 극히 부족하여 이러한 오해는 더욱 쉽게, 그리고 흔히 이루어질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 절에서는 공리주의가 아닌 개개인의 권리를 기반으로 한 논의로도 이 다수 구조의 원칙이 충분히 공정하다는(fair) 것을 밝힐 것이다.
그 전에 왜 개별 권리에 기반하여 다수 구조의 원칙을 정당화하는 작업이 중요한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유들 중 중요한 하나는 다수 구조의 원칙에 대한 반론들 대부분이 그 배분 결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권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대한 많은 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회복 가능성(혹은 단기적인 기대 수명) 등을 주로 고려한 배분 원칙들을 배척하려는 반론 대부분은 그것이 공리주의에 기반하여 장애인이나 중한 질환에 걸린 환자들을 차별한다고 주장한다[13,14].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는 정확한 반론은 아니다. 만약 다수 구조의 원칙이 모 든 이들의 권리를 최대한 동일하게 충족시키려는 원칙이라면, 공리주의의 문제를 제기한 반론들은 - 다수 구조의 원칙이 그것에만 기반하는 것은 아니므로 - 이 다수 구조의 원칙에 적절한 반론을 제기했다고 보기 힘들다. 만약 개별 환자들의 권리라는 관점에서도 이 다수 구조의 원칙을 정당화 할 수 있다면 그 정당성을 배격할 적당한 윤리적인 견해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공리주의와 권리에 입각한 견해를 구분하는 한 가지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원 배분이라는 이슈가 지닌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s)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면, 실제 배분 상황에서 가장 중추적인 도덕적, 정치적 문제는 그 자원을 받게 되는 사람들(winners)과 받지 못하는 사람들(losers) 간 이해 충돌을 어떻게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풀어내는지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보면 단지 몇 명이 사는지, 살 것인지가 더 낫기(better) 때문에 다수 구조의 원칙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 두 집단 간 이해 충돌의 문제를 공정(fair)하게 풀어내는 원칙으로서 다수 구조의 원칙이 정당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해 충돌의 문제를 단지 모든 개개인의 고통 (pain)과 즐거움(pleasure)의 양을 총합하여 해결하려는 것은 전통적으로 공리주의의 한계로 언급 됐다[15].
이론적으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공리주의와 권리에 기반한 견해와의 정확한 차이를 살펴보고 권리에 기반한 견해란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먼저 공리주의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그 사태(state of affairs) 혹은 상황이 좋다는(good) 이유만으로 다수 구조의 원칙을 정당화한다. 반면, 개별 개개 인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그 배분 결정이 정당하다고 하려면 그 결정의 영향을 받는 개개인의 관점에서 모두 정당화되어야 하거나, Scanlon의 계약 주의(Contractualism)에 따르면 그 어떤 사람도 어떤 배분 결정에 대한 합리적인 반론을 제시할 수 없는 경우 정당화 된다[16]. 예를 들어 의료 자원이 부족하여 100명의 환자군 A와 10명의 환자군 B 중 한 쪽만 살릴 수 있다고 하자. 만약 공리주 의에 따르면, 그 배분 결정이 야기할 이후의 사태 (state of affairs) 혹은 상황이 얼마나 좋은(good) 것인지 계산함을 통해 그 결정의 옳음과 그름이 결정된다. 환자군 A를 살리는 결정이 야기하는 사태의 좋음은, 그 100명의 이후 삶에서의 즐거움과 고통을 모두 합하면 구할 수 있는 값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10명이 사는 경우에도 똑같이 그 값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100명과 10명을 살리는 것 사이에서 공리주의의 관점으로 볼 때 옳은 배분 결정은 그 결정이 유발한 사태의 좋음을 최대화하는 행위이다. 즉 그 값이 더욱 높은 쪽으로 결정해야 한다.6) 결국 공리주의에 따르면 이 사태의 좋 음은 배분 결정에 영향을 받는 이들의 관점과 상 관 없이(agent-neutral) 제3의 관점에서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리주의는 자원 배분에 있어서 서로 간 이해 충돌의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권리에 기반한 견해에 따르면, 관점과 상관 없는 가치 판단은 불가능하며 모든 가치 판단은 개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agent-relative) 말한다. 예를 들면 위 예에서 어떤 결정으로 인해 아무리 100명이 산다고 하더라도 10명이 죽게 된다면 이 죽게 될 10명의 관점에서는 현재의 배분 결정이 그들에게 더 나은 것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즉 권리에 기반한 견해에 따르면 자원을 받지 못하는 10명도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공정한 배분 원칙을 찾는 문제로 의료 자원 배분의 문제가 재편된다.
자세한 정당화 과정을 살펴보기 전에, 본 논문은 이 두 견해, 즉 공리주의와 권리에 입각한 견해에 대해 서로 이론적으로 논박하려는 목적이 없다는 점을 밝힌다. 그것보다는, 다수 구조의 원칙이 단지 공리주의뿐 아니라 개별 환자들의 권리에 기반하더라도 충분히 공정한 것임을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당화를 통해 다수 구조의 원칙이 실제 배분 지침을 세울 때 가장 주요하게 추구되어야 하는 것임을 밝히고 그후 그 한계 또한 개개인의 권리에 기반하여 설명하고 여러 실제 요소(예. 연령, 장애 등)를 그 안에서 어떻게 고려 할 수 있는지 논의할 것이다.
그럼 이제 권리에 기반한 견해로 어떻게 다수 구조의 원칙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보다 정확하고 간편한 이해를 위해 Taurek[17]의 구조선 선장의 사례를 차용해 가상 사례를 만들어보았다.
(가상 사례) 회복 가능성7)을 중요하게 고려한 중환자실 배분 지침을 마련했다고 하자. 이 지침 하에서는 한 달에 80명을 살릴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반대로 회복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환자의 중증도만 고려한 배분 지침 하에서는 한 달에 서로 다른8) 40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자.
이 사례를 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가 있다. 먼저 건강보험 등 의료 자원을 구비하는 데에 사용한 공적 재원을 이들이 모두 정당한 몫(fair share)을 내고 마련했기에 공유된 의료 자원(이 경우에는 중환자실 병상)에 대해 서로 동일한 정도로 요구할 수 있다고(equal entitlement) 가정한다.9) 그렇다면 배분 지침을 세울 때 - 만약 이 두 집단에 속한 개개인들이 지닌 여러 관련 요소가 완벽히 동일하다면 - 이들을 최소한 동일하게 대우해야 할(treating everyone as equals) 윤리적 의무10)가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를 간단히 동일한 요구의 원칙(equal treatment for equally strong claims)이라 하자. 여기에서 요구란 공유된 자원에 대해 자신의 정당한 몫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어떤 특정한 분배 지침을 요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Kamm[19]은 “동일한 것에 의한 대체(substitutes as equivalents)”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다수 구조의 원칙이 공정함을 설명한다. 후자의 배분 원칙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40명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지만, 반면 전자(former)의 배분 원칙을 선택하게 되면 80명의 요구를 충족하게 된다. 만약 후자(latter)의 배분 지침에 따라 살게 되는 40명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과 전자의 지침에 따라 살 게 되는 어느(some) 40명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도덕적 측면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면, 다시 말해, 40명을 살리는 것이 이들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든지 완벽히 도덕적으로 똑같은 행위라고 한다면, 다른 것들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 전자의 배분 지침을 사용해 80명을 살리는 행위는 - 이 동일한 40명의 권리가 서로 대체된다면11) - 후자의 지침을 통한 배분 결정에 비해 40명의 요구를 추가로 충족하는 결정이다. 다른 문장으로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여기에서 후자의 배분 지침을 택해 결과적으로 40명을 살리는 결정을 하게 된다면 전자의 배분 지침을 통해 분명히 살릴 수 있었던 40명이 죽게 될 것이고 이 희생을 정당화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다면 - 여러 관련된 요 소가 서로 동일하다면 - 이러한 희생을 야기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따라서 더욱 많은 요구를 충족할 수 있기에 동일한 요구의 원칙에 따라 다 수 구조의 원칙은 공정하다.
Hausman[20]은 이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 정당화한다. Hausman은 John Rawls의 무지의 베 일(veil of ignorance)을 차용해서 이를 설명한다. Rawls[21]는 정의(justice)라는 것은 공정함 (fairness)이고 공정한 원칙(fair rules)이란 무지의 베일이란 장막 뒤에서 아직 어떤 이해 관계나 집단에 속해 있는지 모르는 합리적인(rational) 개개인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위 사례에서 우리가 어느 배분 지침에 따라 살게 되는 환자가 될지 모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면 당연히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배 분 지침을 세우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 자세한 이유는 내가 전자의 배분 원칙을 통해 살게 되는 환자군에 속할 확률이 2배 높으므로(80/120 vs. 40/120) 이들을 살게 하는 것이 내가 - 어떤 환자군에 속할지 모른다면 - 살 수 있는 확률을 최대화한다. 그렇다면 이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많은 수의 생명을 살리라는 다수 구조의 원칙은 공리주의가 아니라 배분 결정과 관련된 모든 개개인이 가진 요구를 동일하게 대해야 할 경우, 즉 동일한 요구의 원칙에 따라 모든 이 들의 공유된 자원에 대한 권리를 공정하게 다루는 원칙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자세한 다수 구조의 원칙의 정당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배분 결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그 자원을 배분 받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동일하다. ② 따라서 이들의 요구가 배분 원칙을 수립하는 데에 동일하게 수용되어야 한다. ③ 그렇다고 보면 더 적은 수를 살리게 되면 - 개별 권리와 주장이 동일할 경우 - 더 많은 이들의 요구가 충족하지 못한 채로 남게 되므로 더 많은 개개인의 요구를 충족하는 원칙인 다수 구조의 원칙은 공정하다.
이제 다수 구조의 원칙의 한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그 한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첫번째는 동일한 요구의 원칙이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항상 다수의 사람을 살리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이다. 두번째는 동일한 요구의 원칙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 즉 사람들의 요구를 서로 다르게 대해야 할 경우 다수 구조의 원칙이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먼저 첫번째, 항상 다수의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공정한지 보다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실제 보건의료의 경우로 다시 돌아와보자. 다수 구조의 원칙만을 따른다면 모든 의료 자원의 배분 결정이 쉽게 회복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이들에게 항상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질환이 너무 중하거나 심한 장애가 있어 회복이 쉽게 되지 못할 것이 예상되는 이들은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우리도 우리의 몫을 내고 있는데, 우리의 요구는 왜 항상(always)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까?”12) 이러한 반문에 단순히 최대한 많은 사람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라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 다수 구조의 원칙만을 따라서 모든 의료 자원 배분이 이루어진다면 - 그 정당한 요구에 상응하는 혜택을 항상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에 이들은 공유된 재원(예, 건강보험)을 마련하는 데에 참여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문제는 공정한 확률(fair chances)의 문제라고 불리며 여러 정치철학자와 경제학자의 논의 주제가 되어 왔다[22-24]. 이 논쟁에서 더 문제가 되는 점은 우리가 자유롭게 소수의 집단에 속할지, 다수의 집단에 속할지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그리고 많은 경우 어떤 집단에 속할지는 사람들이 지닌 특성이나 지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13) 위 가상 사례를 다시 떠올려보자. 회복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중증도만을 고려한 배분 지침을 사용해 살릴 수 있는 이 40명은 다수 구조의 원칙을 추구한 배분 지침을 사용해 살릴 수 있는 80명에 비해 분명히 그 질환이 중한 (severe) 환자들이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일 확률이 클 것이다. 또한 초기 관리가 힘들어 더욱 중한 상태로 내원할 수 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가 - 논쟁의 소지는 있지만 - 배분 결정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다수 구조의 원칙만 따른다면 그 어떤 의료 자원의 배분도 이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며 그렇다면 이를 단순히 공정하다고 결론 짓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이후 장애와 중증도에 대한 논의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그 다음, 두번째 경우, 동일한 요구의 원칙이 정당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연령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연령 이 10대인 환자의 의료 자원에 대한 요구(claim)는 연령이 80대인 환자의 그것에 비해 더욱 중대하게(weighty)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결국 이 두 환자의 요구가 서로 다른 도덕적인 중요성(weight)을 지니기에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으로 다시 표현될 수 있다. 왜 연령이 의료 자원 배분과 관련된 도덕적인 중요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후 연령에 대한 부분에서 자세히 기술될 것이다. 이전 다수 구조의 원칙의 정당화 과정에서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가정(ceteris paribus, other things being equal)을 하였는데, 이들의 요구가 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면 다수 구조의 원칙은 일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80명의 80대 환자들을 살릴 것인지 아니면 40명의 10대 환자들을 살릴 것인지 결정할 때 반드시 많은 수의 사람을 살리는 다수 구조의 원칙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충분히 성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관점에 따라서는 40명의 10대 환자들을 살리는 것이 - 비록 살릴 수 있었던 80대 환자 80명이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 정당한 결정일 수 있다. 연령과 의료진 여부 등을 어떻게 배분 결정에서 고려할 것인지 논의하는 부분에서 이 논점을 다시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이제는 다소 이론적인 논의에서 좀 더 실제 분 배 지침과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의료 자원 분배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기술해보려고 한다. 현재 중환자실 병상과 인공호흡기 등 코로나 19로 인해 부족해진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는 위 가상 사례와 같이 살릴 수 있는 사람의 수와 여러 중요한 가치가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의료 자원 분배에 중요한 여러 가치와 고려 사항은 이론과 같이 서로 완벽히 구분해서 볼 수는 없으며 상호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러 실제 배분 지침에서도 위와 같은 이론적인 논의를 근거로 다수 구조의 원칙을 가장 중심으로 삼고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바로 위에서 살펴본 가능한 반론과 여러 연관된 고려 사항으로 인해 다수 구조의 원칙만을 통해 실제 배분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대유행이 예상되고 있던 올해 초부터 미국의 여러 주와 병원에서 임상의사, 환자 단체, 윤리학자 등이 참여해 설립한 배분 원칙들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 이미 이론적인 배경에 관해 살펴보았으니 이후 3절에서는 더욱 실질적으로 배분 원칙을 세울 때 어떤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고 실제 배분 원칙들은 이러한 고려 사항들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바로 다음 절에서는 위에 설명된 이론적 근거들로 인해 다수 구조의 원칙이 실제 배분 지침에서 어떤 위치를 담당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III. 실제 코로나 19 대유행에서의 의료 자원 배분
본 논문에서 다수 구조의 원칙이란 최대한 많은 수의 사람을 살리라는 윤리적 원칙을 지칭했다. 실제로 이 다수 구조의 원칙은 현재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해 이미 권고되고 시행되고 있는 의료 자원 배분 지침에서 가장 중심이 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실제 환자에 적용할 수 있는 배분 지침을 만든 피츠버그 대학은 환자의 예후와 중증도를 평가하는 The Sequential Organ Failure Assessment(SOFA) score를 가장 크게 그 배분에 고려하고 있다[14]. 이 지침은 환자마다 점수를 매겨 그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는데, 이 점수 산정 방식에서는 환자의 단기적인 예후 및 회복 가능성을 가장 크게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의료 자원 배분의 기본적인 윤리적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라 밝혔다. 또한 미국 펜실베니아 주와 메사추세츠 주는 주 차원에서 이 피츠버그 대학의 배분 지침을 일부 수정하여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 배분 지침으로 적용 중에 있지만 회복 가능성을 주로 배분 결정에 고려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흡사하다[27].
또한 하버드 의과대학 산하의 Brigham & Women’s Hospital의 배분 지침에서도 회복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인공호흡기 및 중환자실 병상 배분에 고려하고 있으며 이는 최대한 많은 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함임을 관련 웹사이트에 간략히 명시하였다[28]. 마지막으로 처음 코로나 19 대유행 상황에서의 의료 자원 배분이 필수불가결 하다고 주장했던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여러 학술 논문에서도 공통적으로 배분 지침을 설정할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윤리적 원칙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비단 공리주의적 견해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생명을 동일하게 대우하는 원칙이라고 설명하였다[10,11].
이렇듯, 현재의 대다수 배분 지침은 다수 구조의 원칙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윤리적인 원칙이 충분히 정당하고 공정한 것 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모든 지침에서 다수 구조의 원칙은 이후에 논의될 여러 고려 사항(예. 연령과 장애)과 다른 윤리 원칙(예. 위급하고 중한 사람을 먼저 살리라는 원칙)과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다수 구조의 원칙이 현재 극심한 의료 자원 부족 상황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원칙이 되어야 함은 계속 강조되고 있다.
다른 고려 사항들을 논의하기 전에, 다수 구조의 원칙을 여러 사항 중에서 어떤 정도로 중요하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보다 명확히 서술할 필요가 있다. 과연 여러 고려 사항보다 다수 구조의 원칙이 의료 자원 배분에서 보다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먼저 의료 자원의 배분에 대한 결정으로 인해 희생될 이들이 어느 정도로 많은 지 항상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한 상태로 내원해 회복이 힘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 1명이 내원했다고 하자. 또한 중하지 않은 상태로 내원해 회복이 쉬 울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 2명이 내원했다고 하자. 이 두 집단 중 -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 단지 한 명을 더 많이 살리기 위해 이전 부정의한 상황에 놓여 있어 중한 상태로 내원할 수 밖에 없었던 이를 희생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충분히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 1명을 살릴 수 있는 의료 자원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 10명을 살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보자. 물론 부정의한 상황에 놓여져 있던 사람 1명을 우선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살릴 수 있었던 10명을 그대로 죽게 두는 것이 정당한가? 결국 이는 여러 고려 사항도 중요하지만, 이를 고려하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면 쉽게 정당화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다른 고려 사항들이 논의되고 고려되고 있는가? 본 논문에서는 크게 연령, 장애 및 중증도, 의료진 여부, 의료진 및 타인에게 혜택을 주는 이들, 건강 및 사회경제적 불평등, 기타 여러 요소를 어떻게 다수 구조의 원칙과 함께 논의해야 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본격적으로 연령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다수 구조의 원칙이 단순히 획득되는 건강 혜택(health benefit)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해보자.
대다수 배분 지침에서는 다수 구조의 원칙과 건강 혜택 혹은 생명-년수(life-years)의 최대화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두 원칙이 연령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배분 결정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다수 구조의 원칙에서는 연령은 오직 회복 가능성에 관련되어 - 고령의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일반적으로 작기 때문에 - 매우 간접적으로만 고려될 것이다.
하지만 생명-년수의 최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연령은 그보다 더욱 큰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예를 들어, 10대 환자를 80세까지 살게 하는 것, 즉 70만큼의 생명-년수(life-years)를 얻는 것과 70대 환자를 80세까지 살게 하는 것, 즉 10만 큼의 생명-년수를 얻는 것과는 7배의 차이가 있기에 70대 환자 7명을 살리는 것과 10대 환자 1명을 살리는 것은 생명-년수를 최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완벽히 동일하다. 반대로 말하면 이 관점에서는 70대 환자 6명을 죽게 두더라도 10대 환자 1명을 살리는 편이 옳은 결정일 수 있다. 따라서 최 대한의 생명-년수를 얻으려는 배분 지침은 간접적으로 연령이 그 배분 결정에 - 다수 구조의 원칙과 비교한다면 -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이 생명-년수의 최대화는 연령 자체를 직접 고려하기보다는 여명을 고려해 더 많이 살날이 남은 이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0대 환자가 회복하더라도 20대까지밖에 살지 못하고, 60대 환자는 회복하면 9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생명-년수를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60대 환자에게 의료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연령 그 자체가 의료 자원 배분에서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살 수 있는 여명이 동일하게 남아있다고 해도 혹은 어린 환자가 그 여명이 적게 남아있다고 해도, 어린 환자에게 의료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실제로 현재 피츠버그 대학에서 개발하고 사용 중인 배분 지침에는 여명이 아닌 현재의 연령 (chronologic age) 자체가 직접적으로 포함되어 어린 연령의 환자를 의료 자원 배분에서 우선하고 있다. 왜 그것이 정당하고 또 왜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어린 사람에게 의료 자원을 먼저 배분해야 한다는 직관적인 주장 중 하나는 바로 공정한 이닝 주장(fair innings argument)이다. 그 근거는 매우 간단하다. 삶의 주기상 여러 중요한 삶의 사건(life events)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 사람들은 이를 모두 경험한 사람에 비해 의료 자원 배분에 있어서 우선권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29]. 야구 이닝으로 따지면, 이제 막 1이닝을 시작한 이들에 비해 8이닝에 접어들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경기가 끝나도 그리 슬프거나 비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위 논의에서와 다르게 연령 그 자체가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서 중요하다는 주장이므로 똑같이 회복 후 1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면, 혹은 10대 환자가 그 이후 더 빨리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10대 환자가 60대 환자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주장은 노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는 이유로 여러 윤리학자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30,31]. 하지만 Daniels[32]는 이 연령에 기반한 배분 지침이 반드시 차별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Daniels는 여러 차별이 본인이 바꿀 수 없는 성별이나 장애 등에 대한 것이지만 연령은 우리 모두가 나이 들 것이기에 이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Daniels는 노인과 젊은이와 같이 연령 집단 (age group) 간(interpersonal) 충돌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각 생애 주기상(intra-personal) 배분으로 보아 연령에 따른 배분 결정을 일부 정당화할 수 있다고 했다.
위와 관련된 연령 기반 배분(age-based rationing)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여기에서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14) 하지만 연령 기반 배분에 대해 보다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렇게 연령을 직접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차별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노년층의 일부 강력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둘째, 대부분 연령을 직접적으로 그 배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예, 공정한 이닝 주장)에 일부 동의할 수 있더라도, 극단적으로 한 살의 차이까지(예, 39세 환자와 40세 환자)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에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물론 연령이 크게 차이가 나고(예, 10대와 80대 환자) 다른 요소(예, 회복 가능성)이 비슷하다면 연령이 그 배 분 결정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연령 외에 다른 요소들을 함께 고려했을 경우에 더 나이 든 환자가 의료 자원을 배분 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무조건 나이가 어린 환자에게 이를 배분하는 것이 항 상 옳은 것은 아니다[34]. 셋째, 코로나 19가 노인층에 더욱 치명적인 감염원이고 20대의 젊은 층에서는 그 치사율이 1% 미만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연령을 배분 결정에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 의료 자원이 배분되지 않는다면 죽게 될 이들에게 먼저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 더욱 그 의료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인구를 간접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35]. 물론 필요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할 경우에 서로 간 연령의 큰 차이는 배분에 있어 도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노년층의 반론이나 연령 기반 배분에 관한 논란으로 인해 연령을 간접적으로 차별할 수 있는 관련된 모든 배분 지침을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옳지 않다. 특히 생명-년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배분 지침을 택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합리적으로 보이며 생명-년수를 고려하는 데에 따른 일부 노년층의 이익에 반할 수 있는 배분은 정당하다.
위에서 먼저 연령 기반 배분에 대한 논의를 정리해보면, 의료 자원에 대한 필요나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서로 간 큰 연령의 차이는 물론 배분 결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완벽히 배척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연령을 기계적으로 배분 결정에 점수화하여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필자는 다소 회의적이다. 물론 이는 더욱 논의가 필요하고 한국의 문화와 가치 체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가 다소 개개인의 생애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 생애 전체에 받을 건강상 혜택을 평등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면 그에 따른 연령을 일부 고려하는 배분은 정당할 수 있다[36].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또한 위에서 논의한 마지막 지점에 대해서는 일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설명한대로 반드시 연령에 대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령이 비슷하더라도 이미 암에 걸려 여명이 1년 남짓 남은 환자와 회복 후 30년의 삶을 살 수 있는 환자 중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하여 한 명만 살릴 수 있다고 하자. 이 둘의 요구를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서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분명히 많은 이는 당연히 이후 30년의 삶을 살 수 있는 환자에게 이 의료 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대부분 현재 적용 중인 배분 지침에서도 그 결과인 생명-년 수와 같은 건강 혜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생명-년수를 고려하는 배분 결정은 충분히 정당함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최대한 많은 생명-년수를 확보하라는 윤리적 원칙을 지나치게 추구함으로 인해 아주 많은 노인 환자가 죽게 된다면 이 또한 윤리적으로 옳은 결정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생명-년수는 분명히 배분 결정에 포함 되어야 하지만 여러 다양한 요소 중 한 가지로 한정해서 고려되어야 하며 이 경우에도 생명-년수를 고려함으로 인해 희생될 사람들의 수를 최소화하라는 다수 구조의 원칙과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자원 부족으로 인해 의료 자원의 배분이 필요해질 것이란 주장이 나온 이래로 의료 자원의 배분 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만성폐쇄성 폐 질환 등 호흡기 기능에 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인공호흡기를 이미 장기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여명이 길지 않고 삶의 질이 좋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극심한 자원 부족 상황에서 이들의 인공호흡기를 빼앗아 다른 이에게 배분할 수 있다는 걱정이 가장 컸다. 만약 이들의 인공호흡기가 다른 이들을 회복시키는 데에 더욱 필요하게 된다면? 또한 살릴 수 있는 다른 이들의 삶의 질이 이러한 장애인들의 삶의 질보다 월등히 좋을 것이라 예상된다면? 의료 자원의 ‘배분(rationing)’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은 이러한 오해를 더욱 증폭시켰다[37]. 이 전 논의에서 삶의 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생명-년수가 배분 결정에 중요하다는 점을 서술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 특히 공리주의자의 입장에서는 - 회복 후 더 좋은 삶의 질을 누리게 될 환자에게 의료 자원 이 먼저 배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전에 잠시 논의한 바와 같이 2명의 낮은 삶의 질을 겪게 될 환자를 살리는 것보다 1명의 높은 삶의 질을 겪게 될 환자를 살리는 것이 공리주의적으로 옳을 수 있다.
가장 먼저 가질 수 있는 의문은 이러한 삶의 질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질 보정 생명-년수(Quality adjusted life-years, QALY)는 사람들에게 설문의 형태로 특정 장애가 동반된 삶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삶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여 산출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시각 장애가 있는 상태로 10년을 살지 혹은 더 짧게 살더라도 이런 장애가 없는 상태로 몇 년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 그 선호도를 답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정상 기능을 하는 상태의 1년이 기본 단위인 1 QALY가 되며 그 계산상으로 장애가 있는 상태로의 생명-년수 1년은 - 정상 기능을 하는 상태를 일반적으로 선호하므로 - 1 QALY보다 작게 된 다[38]. 이와 같이 QALY가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 사용된다면 장애인의 수명을 1년 늘리는 것은 정상 기능을 하는 환자의 수명 1년을 늘리는 것보다 더 낮게 평가될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생명-년수가 아닌 질 보정 생명-년수를 사용하면 의료 자원 배분에서 장애인에 대한 간접적인 배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하지만 여러 윤리학자는 현재 이러한 방식의 QALY 계산법이 정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삶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특히 Brock[39]은 QALY를 계산하기 위한 설문이 대부분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장애를 아직 겪지 않은 이들은 대체적으로 실제 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에 비해 장애를 겪는 삶의 질을 지나치게 저평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들은 장애가 생긴 후에도 여러 일상 생활을 지속하며 꽤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누리지만 이러한 장애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시 각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삶의 질을 굉장히 낮게 평가한다. 이러한 반론과 비슷한 측면에서 Eyal[40]은 실제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의 평가를 의료 자원 배분에 사용하는 것이 더욱 공정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만약 QALY를 더욱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구하여 의료 자원 배분에 사용한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 우려는 일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답은 결국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이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만큼 많은 장애인을 희생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Persad[13,18]는 장애인의 권리를 의료 자원의 배분에서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먼 저 다수 구조의 원칙 자체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개인 -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한 -의 권리를 동일하게 대하는 원칙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QALY 계산법이 장애인을 더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하여도, 삶의 질을 고려하게 되면 높은 삶의 질을 누릴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여러 명의 장애인을 죽게 두는 배분 결정을 용인하게 될 것이며 이는 분명히 차별의 소지가 있다고 서술했다. Persad는 결론적으로 다수 구조의 원칙을 중심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지 않은 생명-년수만을 배분 결정에 고려하는 것이 더욱 정당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더불어 Hausman[20] 또한 건강 혜택을 최대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개개인의 장애나 성별, 다른 배경으로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서 차별하는 것은 또 다른 도덕적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적용 중인 여러 배분 지침에서도 삶의 질, 즉 QALY를 배분 결정에 직접적으로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피츠버그 대 학의 배분 원칙에서는 장기적인 예후(long-term prognosis)와 삶을 현저히 제한할 수 있는 동반 질환(life-limiting co-morbidities)을 고려하고 있어 서 이 조항이 장애인을 간접적으로 차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받고 있다[27].
반면 메사추세츠 주와 하버드 의과대학 소속 병원들이 설정한 배분 지침에서는 삶의 질이나 동반 질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다 수 구조의 원칙과 생명-년수의 최대화가 그 중심 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이 대원칙이 충분히 장애인의 권리를 다른 이들의 권리와 동일하게 대우하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14,27,28].
결국, 삶의 질을 고려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할 수 있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광범위한 동의 아래, 다수 구조의 원칙과 생명-년수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배분 지침을 채택함으로 발생할 수 있는 특정 장애(회복에 중대하게 방해를 주는 장애)15)에 대한 간접적인 차별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명시하고 있다[13,41].
반면 질환의 중증도(severity)를 의료 자원 배분에 고려하는 것은 공정함(fairness)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함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회복하기 힘들어 보이더라도 너무나 중한 상태에 놓인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가치(예, 선한 사마리아인)를 추구하기 위함인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응급실 병상을 배분하는 Triage에서 더욱 중요하게 작동하는 원칙이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중한 상태의 환자들이 의료 자원을 더욱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고 그 필요와 중증도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중증도가 중점적으로 의료 자원 배분에 고려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극심한 공급 부족 상황에서 중하지만 회복이 힘든 환자들에게 너무 많은 자원이 배분된다면 한편 그 자원을 받아 회복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을 죽게 둘 수 있기에 의료 자원 배분에서 중증도만을 고려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일부 중한 사람에 대한 우선권이 가능하다고 하여도 이를 배분 결정의 제1원칙으로 삼기는 어려우며 마찬가지로 다수 구조의 원칙을 보조하는 역할로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11].
마지막으로 추가하자면, 질환의 중증도를 고려하는 것은 현재 부정의한 사회 구조상 더 중한 상태로 내원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적절히 대우한다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절 (5절)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한편 의료 자원 배분에서 논쟁이 격화되는 지점은 의료진에게 우선권을 줄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27]. 실제로 매사추세츠 주, 펜실베니아 주, 피츠 버그 대학, 하버드 의과대학 산하 병원들이 채택 하고 있는 배분 지침에서는 의료진에게 추가 점수를 주어 배분 결정에서 우선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들이 살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들이 이후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그 지침의 근거를 밝히고 있다[14,27,28].
그러는 한편 뉴욕 주에서 2015년 신종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 미리 설정했던 배분 지침에서는 의료진에게 우선권을 주지 말라고 나와 있어 더욱 논쟁이 되고 있다[27,42]. 또한 의료진 외에 우리 사회와 경제에 더욱 이득을 줄 수 있는 이들을 우선해서 의료 자원을 배분할 필요가 있는지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생산 인구에 해당하는 연령층을 더욱 우선할 필요가 있는지, 사회나 방역 체계에서 더욱 필요한 이들(예. 고위 공무원, 의료진 외 방역 관계자 등)에게 의료 자원을 먼저 배분해야 하는지 등 여러 논의거리가 있을 수 있다.
먼저 Brock[43]은 의료 자원의 배분이 건강이 아닌 다른 목표(예. 경제적 성장) 등을 위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단 순히 어떤 이가 사회의 경제나 번영에 더욱 보탬 이 된다는 이유로 의료 자원을 먼저 배분 받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Brock[43]은 의료 자원 배분 이후에 발생할 부차 적인(indirect) 건강상 이득이 존재한다면 이는 배분 결정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에 따르면 사회 경제에 보탬이 되는 이들을 살리는 것은 건강이 아닌 경제상 이득을 고려한 것이기에 윤리적으로 옳지 않지만, 회복 후 더 많은 이를 살릴 수 있는 이들(예. 의료진, 의료진 외 방역 관계자 등)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그 결과가 건강 상 이득을 가져오기에 정당할 수 있다.
하지만 Kamm[19]은 흥미로운 예시를 들어 단 순히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이라는 결과에 대한 기대로 의료진을 의료 자원 배분에서 우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의료 자원이 부족하여 한 명의 외과 의사와 10명의 사람 중 한 쪽만 살릴 수 있다고 하자. 한 외과 의사를 살리면 이 의사가 이후 100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이 외과 의사가 이후 살릴 수 있는 100명을 들어 10명의 사람보다 1명의 외과 의사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조금 다른 경우를 같이 생각해보자. 만약 외과 의사가 심한 두통으로 수술을 못하는 상황에 놓여져 있고 그 두통으로 인해 100명을 수술하지 못해 이들이 죽을 수 있다고 하자. 반면 동일한 같은 자원으로 다른 10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하자. 외과 의사의 두통을 치료하는 것이 이후 수술을 통해 100명이 살게 된다는 이유만으로 더욱 우선되어야 할까? Kamm[17]은 이 외과 의사는 직접적으로 그 자신이 살기 위해 의료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반면 10명은 이 의료 자원이 없다면 그대로 죽게 될 것이기에, 외과 의사 1명의 두통을 치료하는 것보다 - 비록 100명은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되겠지만 - 10명을 살리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 결국 Kamm[17]은 이 사례를 통해 단순히 회복 이후 발생할 결과를 들어 의료진을 자원 배분에서 우선시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직접적으로 의료진이 의료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 또 그 의료진이 이후 많은 사람을 살린다고 해도 - Kamm[17]은 개인이 특정한 직업군으로 단지 분류된다고(categorized) 해서 -물론 다른 여러 이유가 중첩될 수는 있겠지만 - 의료 자원 배분에서 우선권을 주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 이 논쟁에서 단순히 의료진을 우선 하는 것이 이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게 된다는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적인 주장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만약 코로나 19 환자를 치료하는 중에 코로나 19에 감염된 의료진이 있다고 하자. 굉장히 많은 이들은 - 그 궁극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 이러한 의료진은 의료 자원을 먼저 받을 만한 자격 (desert)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44]. 이 자격이라는 개념은 물론 명확히 글로 서술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렇게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한 일을 하던 중 감염에 노출된 의료진에게 그 숭고한 이 타적 행위를 보상해주기 위해 자원 배분의 우선권을 주는 것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서도 필수 분야 종사자 및 일차 대응 의료진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이는 -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에 임했다면 - 그 숭 고한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서술했다[45].
비슷한 측면에서, 견해에 따라서는 코로나 19에 대항한 백신이나 치료제와 관련된 임상 시험에 참여한 이들에게 의료 자원을 먼저 배분하는 것도 이들의 이타적인 희생 정신을 들어 그들이 받을 만한(deserve)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또한 어떠한 이들은 그 직업상(예, 돌봄 노동자, 대면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 코로 나 19에 노출될 위험이 높지만 여러 사회적인 혜택을 위해 - 개인의 이득뿐만 아니라 - 지속적으로 이 업무를 해야 하는데, 이들에게도 동일한 이유로 - 일부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 의료 자원을 먼저 받아야 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먼저 단지 특정한 분류에 속하는 직업만을 이유로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서 우선시하는 것 자체는 차별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분류된 직업군만을 고려하지 않고 코로나 19의 감염 확산을 막는 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고 기여하고 있었던 의료진과 관련된 비의료진 모두로 한정해서 그들이 직접 필요로 하는 의료 자원 배분의 우선권을 부여한다면 그 논쟁을 일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동의가 힘들 수도 있으나 단순히 그들이 회복한 후 더욱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외에도 그들이 공동체나 사회에 그러한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먼저 의료 자원을 받을 만한 사람 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물론 이 또한 여러 다른 요소(예, 회복 가능성, 연령 등)와 더불어 한 요소로 취급되어야 하며 그런 기여를 했다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의료 자원 배분에서 우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존 건강 불평등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의료 자원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할 수 있다. 가령 사회경제적 수준이나 지역에 따른 기대 수명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더 낮은 기대 수명을 살기로 예상되는 이들에게 의료 자원을 먼저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먼저 이런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만약 사람들이 서울시 서초구(서울 내에서 가장 기대 수명이 높을 것이라 예상되는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여성이 평균적으로 오래 산다는 통계적 사실로 인해, 내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료 자원 배분에서 낮은 우선순위를 부여 받는 것이 정당한가?
이 논의는 Sen[46]이 논문 “왜 건강 형평성인 가?(why health equity?)”에서 다룬 적이 있다. 여기에서 Sen은 건강 결과의 평등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낸 사회적 구조와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단지 여성이 오래 살 것이라 해서 의료 자원 배분에서 배제된다면 이는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만약 이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면, 단순히 건강 결과의 불평등을 지표로 의료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Segall[47]은 Daniels의 이론 - 건강 불평등이 모 든 사람이 누릴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데에 걸 림돌이 되기 때문에 의료 자원을 보다 평등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을 비판하면서, 의료 자원의 배분은 건강 결과의 불평등과는 별개로 건강할 수 있는 기회(opportunity for health)를 평등하게 한다는 원칙 하에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의료 자원이 배분되어야 하며 단순히 결과의 평등을 기계적으로 성취하기 위하여 부자에게 의료 자원을 배분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는 무엇을 평등하게 할 것인지(equality of what?)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며 많은 경우 단 순히 건강 결과를 포함한 어떤 결과만을 평등하게 하려는 자원의 배분이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48-50].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떤 사회적 지위나 인종 등을 의료 자원 배분에 전혀 고려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Schmidt[51]는 현재의 배분 지침이 특정한 인종을 지녔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그 주요한 주장은 바로 인종 및 사회적 지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masking) 배분 방식은 기본적으로 편향되어(biased) 있다는 것이다. 그 자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많은 사람을 살리라는 다수 구조의 원칙을 추구하기 위해 설계된 배분 방법은 회복 가능성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평가한다. 만약 그렇다면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거나, 빈곤한 지역에 살거나, 흑인이나 라틴 인종인 사람들의 순위가 결과적으로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흔히 부정의한 사회 구조로 인해 코로나 19로 인한 위험에 더욱 심각하게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여 더욱 나쁜 건강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에 회복이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복하기 힘든 이들을 배제하는 결정은 결과적으로 현재 부당한 사회 구조에서 수혜를 입고 있는 이들을 우선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Schmidt는 이러한 인종 및 사회적 지위 등16) 모든 관련 사항을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서 사용될 점수에 가중치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다수 구조의 원칙만을 따라 의료 자원 배분이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이미 중한 상태에 이른 이들과 회복이 힘들더라도 더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오래 노출된(historical injustice) 이들에게 의료 자원 배분에서의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상의 논의는 다소 논쟁적일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자원이 풍부하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또한 여러 다른 요소가 동일할 경우에 단지 어떤 이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먼저 중환자실 병상을 배분 받게 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반론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 거리를 직접 논의하지 않더라도 일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은 있다. 현재 사람들의 의료 자원에 대한 필요와 코로나 19로 인한 위험이 보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안 좋은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크게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더 처지가 나은이나 처지가 나쁜 이를 동일하게 대우한다는 원칙에 따른 의료 자원의 배분은 결과적으로 더 처지가 나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더 많은 자원을 부여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12]. 그리고 회복 가능성을 평가할 때, 부당한 사회 구조로 인해 회복이 힘든 혹은 힘들어진 이들에게 무조건 낮은 우선순위를 부여해서는 안되며 여러 사항이 균형된 방식으로 고려되어야 한다.17)
이 균형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면, 다수 구조의 원칙은 충분히 질환의 중증도 및 사람들의 연령 등 다른 요소들과 균형 잡힌 방식으로 추구되어야 할 것이고 이 균형은 부정의한 사회 구조를 적절히 의료 자원 배분에 반영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끝으로 정부와 관련 방역 단체들, 실제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에서까지 지역 간 격차와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코로나 19의 중증도와 회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의료 자원 배분 방식에 적절히 고려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본론에서 추가로 논의되어야 할 것 하나는 이미 의료 자원, 특히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를 빼앗아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이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것이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의료 자원의 재배분을 위해서는 이를 사용하고 있는 이들을 모두 포함해 어떤 환자가 더 우선되어야 하는지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반복적인 Triage(repeat triage)로 부르며 여러 실제 적용 중인 배분 지침에서도 이 재평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Brigham & Women’s Hospital의 지침에서는 그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를 이미 사용 중인 의료 자원을 우선순 위가 더 높은 사람에게 주지 못한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28]. 다시 말해 이미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거나 인공호흡기를 사용 중인 환자들의 우선순위를 반복적으로 평가하고 의료 자원의 배분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병원에 온 순서대로, 즉 선착순 (first-come, first-served)으로 의료 자원을 배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물론 선착순은 평상시 - 자원이 극히 부족하지 않을 때 -에는 대부분 문제 없이 적용되던 배분 원칙이고 우선순위 설정이라는 인위적인 개입 없이 의료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현재 배분 지침과 권고에서 선착순에 의한 배분은 회복될 수 있지만 더 늦게 방문한 사람들을 단순히 그 도착 시간이 늦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시킨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있다.18)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반복적인 Triage는 다수 구조의 원칙을 추구하는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반복적인 Triage는 의료 자원의 배분이 초래할 단기적인 결과 외에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입원해 있거나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항상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자신이 지닌 의료 자원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료진을 신뢰하기 힘들 것이며, 장기적으로 의사-환자 간 신뢰의 상실은 더 안 좋은 건강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52]. 특히 비 교적 좋지 않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 장애인들이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의 경우, 그 신뢰는 더욱 위협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일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여명이 짧고 삶의 질이 비교적 높지 않다는 점 때문에 자신들의 인공호흡기가 다른 이에게 재배분될 수 있음에 크나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37,53].
또한 Triage를 지나치게 자주 반복하게 되면 진료의 연속성(continuity of care)이 떨어질 수 있으며 이는 의료 자원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측면을 모두 고려해볼 때, 이미 의료 자원을 가진 이들에게 그들의 자원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보장할 필요가 일부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재배분을 금지한다면 선착순과 다름 없는 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이 또한 다수 구조의 원칙을 중심으로 하여 너무 많은 사람이 살려질 수 있음에도 희생되지 않도록 반복적인 Triage가 필요하겠지만, 이미 자원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권리를 보충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19가 아닌 질환으로 인해 의료 자원이 필요한 이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먼저, 모든 중환자실 병상이 코로나 19 환자들에게만 배분되어야 할 어떠한 도덕적인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회복을 위해 의료 자원(예. 중환자실 병상)이 더욱 필요한 환자가 단순히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서, 이 환자를 코로나 19 환자들과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는 한편 현재 당장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수술과 필요치 않은 중환자 치료를 미루고 더욱 응급하고 회복에 필요한 이들을 우선해야 할 당위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에 따라, 2차 대유행 이전에 더욱 광범위한 환자군을 포함할 명확한 기준과 배분 방식을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더욱 확고히 주장할 수 있다.
IV. 정리 및 결론
본론에서는 회복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배분 지침은 비공리주의적인 접근, 권리를 기반한 견해로도 정당화가 가능하며 의료 자원 배분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전 여러 부분에서 충분히 논의한 바와 같이, 다양한 고려 사항이 추가적으로 존재한다.
이전에 논의한 여러 고려 사항에 대한 주장을 정리해보면, ① 연령에 있어서는 그 자체를 기계적으로 배분 지침에 사용하기보다는 회복 후 여명 이 매우 많이 남은 이들에게 가중치를 주는 방식을 통한 간접적인 고려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② 장기적인 삶의 질을 의료 자원 배분에 고려하는 것은 장애인을 차별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받아들여져야 하며 단순화된 생명-년수만을 배분 결정에 고려하는 것이 더욱 정당하다. ③ 의료진이나 임상 시험에 참여한 이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정당화 가능하나 그들의 직업만을 근거로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직업(방역에 참여하는 비의료인 혹은 돌봄 노동자 등)에 속해 있더라도 코로나 19로 인한 건강 위협에 대응하고 있는 혹은 대응하고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정당해 보인다. ④ 사회경제적인 위치를 의료 자원 배분 결정에 직접 고려하는 것은 논쟁의 소지가 있지만 이들을 최소한 동일하게 대우한다는 목표 아래,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소득 이 적은 이들에게 의료 자원에 대한 동일한 접근성을 제공해야 하며 오히려 이들을 동일하게 대한 다면, 의료 자원에 대한 필요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이들에게 더욱 집중해 있는 상황을 볼 때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많은 혜택을 줄 것이다. ⑤ 이미 의료 자원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자원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약간의 우선권을 주는 것도 합리적으로 보이나 그것이 너무 큰 희생을 불러온다면 이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배분하는 것 자체는 일부 정당해 보이며 다른 가능한 배분 원칙(예. 추첨, 선착순) 등은 너무 많은 희생을 불러오기 때문에 이를 채택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크다.
V. 나가며
대부분 배분 지침에서 사용하고 있는 점수 제도는 물론 다양한 가치를 충분히 배분 결정에 포함시키기에 부족하다. 또한 1점의 차이가 반드시 우선순위의 높고 낮음을 적절히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우선순위 결정에 포함해 고려해야 할 환자들이 너무 많다면 그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점수 제도가 불가결한 측면은 있지만, 이 다양한 가치 간 충돌과 그 상대적인 중요성을 결정하는 것은 그 점수를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정한 절차에 의한 어떤 의사 결정과 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피츠버그 대학의 배분 지침에서도 점수 방식으로 먼저 대략적인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비슷한 점수대를 지닌 환자들 사이에서는 점수가 아닌 병원 차원의 배분 결정 위원회(triage committee)나 혹은 시민들을 참여시킨 어떤 협의체를 통한 방식을 사용해 의료 자원을 배분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어떤 방식이든 한국의 시민들이 더욱 우선시 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적절히 배분 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10,12,54]. 특히 대유행이 오기 전 미리 여러 관련 단체와 시민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이해당사자들 간 토론을 이끌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의 논의는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또한 배분 결정에 따라 의료 자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 비록 그 배분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 그들의 생명을 회복시키지 못하더라도 여러 다른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완화 의료나 의료진과 환자, 그와 관련된 가족 및 보호자들의 충격과 정신적 어려움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서비스들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9,55]. 따라서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배분 지침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배분이 가져올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적절한 장치들을 고안하는 것도 대유행이 오기 전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